우리나라는 봄에는 나무들이 꽃을 피오고 잎을 펼친다. 여름에는 줄기와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잎이 우거져서 그늘을 드리운다.
나무의 봄살이
이른 봄에 꽃 피는 나무는 잎이 나기에 앞서 꽃이 먼저 핀다. 그 가운데서도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나무는 생강나무다. 3월 중순쯤에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노란 꽃을 피운다. 이때는 바람 끝이 아직 찰 때라서 추우면 꽃잎을 오므리고 따뜻하면 펴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농사꾼들은 생강나무 꽃을 보고 농사 채비를 서두른다. 볍씨를 담그고, 보리밭에 김을 매고 거름주기에 바빠진다. 생강나무는 꽃이 피고 나서 한 달이나 지나야 잎이 나온다.
생강나무 꽃이 핀 지 열흘쯤 지나면 동네에서 산수유 꽃이 핀다. 산수유도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산수유 꽃은 생강나무 꽃보다 더 다닥다닥 붙는다. 그래서 더 화려하다. 산수유 꽃이 핀 지 열흘쯤 지나면 울타리에서 개나리꽃이 핀다. 이때가 4월 초순이다. 봄이 빠른 제주에서는 더 빨리 핀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모두 노란색이다. 생강나무꽃, 산수유 꽃, 개나리꽃이 모두 노란색이다. 개나리꽃이 질 무렵이 되면 뜰에서 목련이 핀다.
4월 중순이 되면 진달래가 핀다. 산비탈이 붉게 보이도록 온 산에서 피어난다. 진달래꽃이 질 때가 되면 봄이 한창 무르익는다. 동네마다 여기저기서 과일나무 꽃이 피어난다.
앵두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벚나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꽃이 핀다. 들에는 아지랑이가 끼고 사람들 옷자림도 가볍고 밝아진다. 버드나무는 가느다란 가지에 연한 잎이 나온다.
이제 나무마다 나뭇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겨울 동안 비늘잎 속에 꼬깃꼬깃 접혀서 웅크리고 있던 어린싹이 두껍고 딱딱한 비늘잎을 헤치고 돋아난다. 이때부터 나무에서 나물을 할 수 있다. 두릅나무 새순은 이 무렵에 난다. 두릅보다 조금 늦게 울타리 가에 심어 높은 참죽나무에서 새순이 올라온다. 이 무렵에 산에 가면 산나물이 한창 난다. 오갈피나무나 고추나무나 화살나무는 어린잎을 따서 먹는다. 끓는 물에 데쳐서 무쳐 먹으면 아주 맛있다. 어지간한 산나물은 삶아 말려서 묵나물을 해 두고 먹는다.
5월로 접어들면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신갈나무 숲을 바라보면 빛깔이 날마다 달라진다. 거무튀튀하던 빛깔이 조금씩 밝아지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연한 풀빛이 된다. 이제 산은 하루가 다르게 풀빛이 짙어진다. 참나무 잎이 푸르게 될 때쯤이면 뒤늦게 산벚나무 꽃이 핀다. 산벚나무 꽃은 연한 분홍색이다. 푸른 산속에서 군데군데 보이는 벚꽃은 참 보기 좋다.
나무의 여름살이
초여름에 접어들면 철쭉꽃이 핀다. 철쭉은 꽃이 피면서 잎도 함께 핀다. 붉은 철쭉꽃은 진달래꽃보다 색이 짙다. 진달래꽃은 그냥 따 먹지만 철쭉꽃은 못 먹는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참꽃이라 하고 철쭉꽃은 개꽃이라 한다.
철쭉꽃이 질 때가 되면 아까시나무 꽃이 활짝 핀다. 아까시나무 꽃은 남쪽 지방에서 5월 초순에 피기 시작하여 점점 북쪽으로 올라온다. 서울에서는 5월 중순쯤에 핀다. 아까시나무 꽃이 피면 산어귀가 하얗게 덮인다. 이 무렵에 아까시나무 가까이 가면 달콤하고 향기로운 꽃향기가 물씬 풍긴다. 벌도 아주 많이 모여든다.
대추나무는 이제서야 잎이 피기 시작한다. 다른 나무가 잎이 한창 푸르게 자라도록 죽은 듯이 있다가 뒤늦게 새싹이 나오는 것이다.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아주 빠르게 자란다. 대추도 밤이나 감보다 빨리 여문다.
대밭에서는 죽순이 올라온다. 죽순은 굵직하고 검붉은 소뿔처럼 생겼다. 왕대나 솜대나 맹종죽에서 올라오는 죽순을 먹는다. 맹종죽 죽순이 4월 말에 가장 먼저 올라오고, 솜대 죽순이 5월, 왕대 죽순이 6월에 올라온다.
아까시나무 꽃이 핀 지 한 달쯤 지나 6월 중순이 되면 밤꽃이 핀다. 밤나무는 꽃이 나무를 덮어서 온 나무가 하얗게 보인다. 그래서 밤나무가 많은 산은 온 산이 흰색으로 덮인다. 밤꽃에는 꿀이 많아서 벌도 많이 모여든다.
6월에는 소나무에서 새순이 올라온다. 묵은 가지의 바늘잎은 우중충한데 새순은 산뜻한 연두색이다. 새순은 비틀어 뽑으면 소나무 껍질이 벗겨진다. 소나무 껍질에서 바늘잎을 떼어 내고 겉껍질을 벗겨 내면 푸른 속껍질이 남는다. 이것을 '송기'라고 한다. 송기 속에는 당분이 들어 있어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옛날에 흉년이 들어 양식이 없을 때 많이 먹었다.
7월에는 싸리 꽃이 핀다. 싸리는 키가 작아서 꽃이 피어도 다른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양지바른 곳에 외따로 서 있는 싸리는 꽃이 무척 화려해 보인다. 싸리 꽃에도 꿀이 많다. 아까시나무 꽃, 밤꽃, 싸리 꽃에는 꿀이 많아서 벌을 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꽃 피는 때를 맞추어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옮겨 다니면서 벌통을 놓는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꿀도 다르다. 아까시나무 꿀이나 싸리 꿀은 맑고 향이 은은하다. 밤 꿀은 색이 탁하고 쓴맛이 나며 향이 짙다.
여름에는 뜰에서 무궁화꽃이 핀다. 무궁화 꽃봉오리가 가지의 밑에서부터 위까지 촘촘히 달려 있다. 초여름에 밑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여 점점 위로 올라간다. 하루에 한 송이씩 여름 내내 잇달아 피고 진다.
감꽃도 핀다. 감꽃은 오목한 단지 모양이다. 꽃잎은 매끄럽고 도톰하다. 색은 젖빛인데 떨어진 뒤에는 점점 누래진다. 감꽃을 아삭아삭 씹으면 처음에는 떫어도 자꾸 씹다 보면 단맛이 우러난다.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
여름에는 열매가 악는 나무도 많다. 초여름이 되면 뽕나무에 오디가 검게 익고 벚나무 열매인 버찌가 익는다. 앵두, 살구, 자두, 매실도 초여름에 난다. 이어서 복숭아가 익기 시작한다. 복숭아는 초여름에 나는 올복숭아부터 초가을에 나는 늦복숭아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아주 많다. 맛은 늦복숭아가 더 좋다. 산에서는 산딸기를 비롯하여 명석딸기, 나무딸기, 복분자딸기가 한여름에 익는다.